리더(leader)와 보스(boss)

  • 작성자 : 허정열
  • 조회 : 1,169
  • 12-05-24 09:44

남북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맥클란 장군은 가장 뛰어난 장군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를 격려해 주려고 링컨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그의 야전 사령부를 방문했다. 때마침 장군은 전투장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링컨은 몇 시간 동안을 사령관 실에 앉아서 그를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장군이 들어왔다. 그는 방안에 앉아있는 대통령과 장관을 본체만체 하면서 그냥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링컨과 장관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장군이 곧 내려오리라 생각하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하녀가 나타나더니 “죄송합니다만 장군께서는 너무 피곤해서 잠자리에 드셨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리라고 이르셨습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놀란 것은 장관이었다. 일개 장군이 직속 상관인 자기는 고사하고 감히 대통령마저도 그렇게 무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각하, 저렇게 무례한 놈은 제 생전에 본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저 장군을 당장에 직위해제 시키셔야 합니다.” 링컨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조용히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아니다. 저 장군은 우리가 이 전쟁을 이기는데 절대 필요한 사람이다. 저 장군 때문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이 유혈의 전투가 단축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말고삐를 잡아주고 그의 군화도 닦아줄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 여기서 링컨은 리더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역시 인간이다. 또한 그는 한나라의 대통령이다. 일개 장군의 엄청난 무례를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용서 할 수 없는 모욕이라고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잠도 못자고 전투에 시달린 장군에게는 또 다른 전투를 위해서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투중의 장군에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온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의 파면이 군대의 사기에 미칠 영향도 생각했을 것이다. 링컨은 노여움을 누르며 이런 저런 계산을 하기 위해 잠시 동안 말이 없었던 것이다.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간다. 지도자는 그들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권위에 의존한다. 지도자는 선의에 의존한다. 보스는 늘 회초리를 필요로 한다. 지도자는 회초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보스는 “나”라고 말한다. 지도자는 “우리”라고 말한다. 보스는 “가라”고 명령한다. 지도자는 “가자”고 권한다. 보스는 모든 것을 숨겨가며 일한다.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일한다. 보스는 남의 공을 가로챈다. 지도자는 남의 잘못을 도맡는다. 보스는 남을 믿지 않는다. 지도자는 남을 믿는다. 보스는 겁을 준다. 지도자는 희망을 준다. 보스는 복종을 요구한다. 지도자는 존경을 모은다. 지도자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보스는 자기 눈만으로 세상을 본다. 지도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얻는다. 보스는 자기의 “약점에 의해” 권위를 유지한다. 지도자는 자기의 약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보스는 자기의 약점을 숨긴다. 권위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가까이 한다. 보스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까지도 미워한다. 지도자는 내일을 위해 일한다. 보스는 오늘을 위해 산다. 지도자는 권위를 쌓는다. 보스는 권력을 쌓는다. 지도자는 타협을 잘하고 대화를 즐긴다. 보스는 타협을 모르고 대화를 거부한다. 지도자에게는 귀가 여러 개 있다. 보스에게는 귀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듣기 좋은 말을 듣기위한 귀 하나만을 갖고 있다.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려준다. 보스는 누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지도자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보스는 자기말도 무시한다. 지도자는 지지자를 만든다. 보스는 부하만을 만든다. 지도자는 권위마저도 즐기지 않는다. 보스는 권력을 즐긴다. 지도자는 권력이란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보스는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자기 후계자의 짐을 덜어준다. 보스는 후계자에게 무거운 짐만을 떠넘긴다. 지도자와 보스 사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이 중국으로 순회공연을 갔을 때 일이다. 미국 대원들은 북경에서 중국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어설픈 것이었다. 1악장이 끝나자 중국인 지휘자는 지휘봉을 유진 올만디에게 넘겨주었다. 올만디가 지휘를 시작하자 중국인 악단원들의 연주는 눈부시게 달라졌다. 중국의 단원들은 올만디의 지휘를 따라 연주하면서 기쁨의 미소까지 띠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중국인들만이 아니었다. 미국인 단원들도 자기네 지휘자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그제서야 깨달은 듯했다. 그들은 권위를 앞세우는 것이 보스이며 참다운 지도자란 권위를 등 뒤에 업고 다닐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연주가 끝나자마자 열띤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악단 보다도 자기네의 지휘자 올만디에게 바치는 감사의 박수였다.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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