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 마드리드 공항에서 317 mile 떨어진 스페인 제2의 도시 Barcelona 로 이동한다.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과 접견지역인 카탈루나 (Catalonia) 지방의 중심지이며 그들의 언어 Catalan 을 고집하여 학교에서도 스페인어와 병용하여 가르치고 Catalan 국기도 걸어 놓는다. 중세기 부터 무역중심지 해안도시며 1888년과 1929년 만국박람회,1992년 올림픽,2004년 국제문화제 등등 굴직한 국제 행사로 세계적 관광지로 발돋음하여 인구 160만 도시에 매년 3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가 된 200 년 계획된 도시의 모양을 갖추었다. 9개의 Unesco 문화재중 7개가
Gaudi 의 건축 작품이니 Barcelona는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us 를 타고 스페인광장을 지나 몬주익( Montjuic)산에 오르면 온 시내와 지중해가 보인다. 5,5000 명이 들어갈수 있다는 올림픽 주 경기장을 보고 언덕에 있는 1992년 올림픽의 마라톤 승자인 황영조 조각과 기념비를 자랑스럽게 돌아본후 시내로 내려와 지중해 해변( Costa Bravo)의 Port Vell 항구에서 Columbus 기념상과 인공섬을 산책후 외곽 도시 북서쪽 60 mile 떨어진 Montserrat 산에 도착 Cable 차 타고 1200 m 높이의 기암절벽에 있는 수도원으로 올라간다.성당안의 검은 성모와 성당 소년 합창단의 기숙사 기프트샵을 돌아보고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하루를 마친다.
10월 7일 오전에는 도시의 중심 인 람불라스거리( Las Ramblas) 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한때는 이 길이 강이 흘렀으나 강이 마른후 강위에 Pave 를 덮고 물결흐르듯이 색이 다른 돌을 깔은 차도 보다 더 넓은 길이며 카탈루냐 광장에서 부터 전날 들렸던 Port Vell 항구까지 1.3 km 의 거리며 길 양옆으로 나무숲과 식당 ,꽃집, 가게로 채워졌고 옆길로 명소로 가는 길이 열려있어도 골목길에 들어 섰다가 길을 잃을것 같아 람브라스길로만 산책해도 재래시장과 기이한 빌딩들이 많아 신기하다. 오후에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일부인 구엘(Guell) 공원으로 갔다. 1900-1914년 Eusebi Guell 백작이 시내와 지중해가 보이는 파라다산 언덕에 영국풍의 공원과 주택단지로 가우디에게 설계와 건축을 의뢰하여 부유층에 분양할 계획이였으나 부지의 경사가 심하고 돌이 많아 말타고 다니던 시대라 주택을 원하는 사람이 없어 실패하고 그의 후손도 유지비를 감당할수 없게되자 시에 기증하여 1922년 시민공원이 된곳이다. 공원을 나와 시내의 미로같은 골목인 montcada st. 에 있는 최초의 미술가의 이름을 딴 작은 Picasso 미술관에 들렸다. Picasso 의 9-22 살 까지의 미술 작품을 소장한 곳이다. 그는 미술선생의 아들로 Malaga에서 태어났고 14세에 Barcelona 로 이주 19살 파리로 떠날때까지 고풍스러운 이 거리에서 미술학교를 다녔다. 미술관을 나와 Gaudi 의 혼신이라 할수 있는 성가족 성당으로 갔다.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는 1882년 건축이 시작되었고 Gaudi 사후 100주년 되는 2026년에 완성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중이며 정부의 지원없이 민간자본인 후원자의 기부금과 관광객 입장료 수입으로 짓고있다. 가우디는 1개의 파사드와 4개의 작은탑만 완성하고 사망했으나 지금은 각 나라에서 뽑은 최고의 건축가들이 그의 설계도를 따라 각지에서 모인 돌을 다듬어 가며 가우디의 꿈이 이루어 지고 잇다. 그의 건축 철학인 “인간은 창조하지않는다. 단지 발견할뿐이다” 라고 했듯이 이 건물의 최고의 탑 높이 170m 로설계된것도 신이 만든산 175 m의 Montjuic 보다 인간이 만든 건물이 더 높을수 없다는 신념이다. 자신의 재능을 그리스챤 심볼과 건축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Antonio Gaudi (1852-1926) 는 Catalonia 의 시골마을 Reus 지방에서 조상때부터 대장장이 장인의 집안 자손으로 출생 구리를 제련,무쇠를 녹이는 금속 공예법을 익혔다. 5세때 심한 관절염으로 소아마비가 되어 혼자 놀면서 자연과 벗하며 하늘,구름,물과 바람,나무와 식물, 동물과 곤충, 산과 바위 등등 어린시절 관찰력이 천재적인 상상력과 결합하여 예술적인 건축으로 거듭났다. 17살때부터 건축학을 공부하여 바르세로나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건축가로 명성을 날렸으나 성가족성당의 건축을 맡은후 그의 열정은 오직 성당 건축 으로 그의 소득,시간, 마음 을 다 쏟았다. 어린시절
대부분의 가족을 잃은 그는 세상 열락 과 사생활도 없이 연애 한번 못하고 독신으로 살면서 인부들과 동거 동락 아무도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빵 한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새며 뜯고 고치고 하다가 피로하면 작업실에서 쓰러져 자고, 그가 전차에 치여 죽을때 노숙자같은 그를 알아보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교황청이 교회건축에 대한 그의 업적을 인정하여 성자들만 묻히는 성가족 대성당 지하에 묻혀 교회가 완성 되기를 기다린다. 내가 나됨을 포기하고 예술과 교회건축을 위해 자신의 소득을 다 헌금으로 바치고 시간과 노력과 마음을 다 쏟아부어 헌신 한다는 것이 정열의 나라 스페인 사람에게 가능한것 같다.
정치와는 별개로 로마나 무어인의 예술과 건축의 세계를 그렇게 아끼고 간직할수 있다는 넓은 마음에 찬사를 보낸다. 내가 예상 했던 것보다 더 깊은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감명깊은 여행이였다.
이 여행의 highlight 인 Sagrada
Familia 에 안녕을 고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는 Christopher Columbus 가 1492년 미 대륙을 발견함으로 세계의 모든 종족이 모여 USA 가 되었고 나에게 AMERICAN Dream을 이루게 해 주었음을 깊이 생각하며 집으로 향할 것이다.
몬주익 공원( Parc de Montjuic) MNAC 미술관 앞에서 바라본 Barcelona 시내.몬주익 언덕 주변에는 Miro미술관,올림픽 주경기장,식물원이 있는 213 m 언덕에 있어 360도 돌아가며 시내가 보인다.Catalanism 의 상징인 Ionic 양식의 4개의 기둥,Magic Fountain, 2 개의 47m의 Venetian Tower, 붉은돔 빌딩은 투우장이였으나 이 도시는 투우를 금하여 Mall 로 변경되었다. 이 앞의 광장은 1929년 만국박람회때 지은 스페인 광장이다.
번화가 람브라스(La Ramblas) 끝에있는 Port Vell 항구로 지중해에 있는 제2항구며 최신형 요트 정박장과 60 m columbus 상이 서쪽으로 손가락을 가르키며 신대륙 발견 500 주년 기념탑과 인공섬에 대형Mall이 들어선 1888년 만국박람회때 개선된 항구다.
해물볶은밥 파에야 (Paella Seafood) 는 스페인 전통음식으로 크고 깊은 Pan에 해물볶은밥처럼 오분에 넣어 뜨겁게 요리한후 각자의 섭시에 담아 돌리며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동북부 해안 지방에서는 Moorish 시절 Roman 의 Irrigation System 을 이용하여 쌀이 많이 생산되었고 해안지방이라 생선이 많이 잡힘으로 같이 볶아 가족모임이나 종교행사때 사용하게 되었고 사순절 음식으로도 사용한다.
Barcelona에서 60 mile 떨어진 몬세라트 수도원(Monastery Santa Maria de Montserrat)은 해발 725m 기암절벽의 산 중턱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이다.아마도 9세기경 은둔 수도자들이 기도했던 장소가 1025년 정식으로 Montserrat 수도원이 세워지고 12세기에 소년합창단이 생기고 차츰 세상에 알려 지기 시작했다.18세기 나폴레웅 군대에 의해 심히 파괴되고 내란때 많은 수도승이 살해당했다한다.지금은 Catalonia 자치정부의 보호로 재건과 발전을 하게 되었고 80 여명의 수도승들은 20만권의 책이 있는 도서관과 인쇄소를 관리하며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을 맞는다 해질녁에는 소년 합창단의 노래를 들을수 있다 한다.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상은 카탈루냐의 수호 성모신으로 믿고 있으며 목제 조각인 성모상과 예수님상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검어진다고 한다.보호하기위해 전부 유리로 막고 손에든 황금색 원주를 잡을수 있도록 구멍으로 내 놓았다. 이 원주를 잡고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 준다는 전설이 있다.
람브라스 거리에 위치한 재래시장(Marcat de St.Josep de la Boqueria)은 1840년 St,Joseph 수도원 있던 자리에 들어선 전통시장으로 지구상 모든 식재료 모임이 있다.유럽에서 2 번째로 돼지고기 생산량이 많은 스페인의 하몽은 돼지고기 뒷다리를 통채로 소금에 절여 X-Mas Stocking처럼 걸어 찬공기로 말리며 적어도 2년이상 숙성 과정에서 무게는 반으로 줄고 기름은 불포화산인 Oleic Acid 으로 변한다고 한다. 하몽과, Sausage, 얇게 짜른것 많은 종류가 전시되어 있다.
람브라스 거리에 있는 브르노씨집( Casa Bruno Cuadros)은 1888년 만국박람회 대비하여 도시계획이 되어질때 우산공장을 대표하는 현대식건물로 예술적인 장식을 하였고 여러 형태의 우산과 부채와 용으로 집을 장식하였다. 예술 건축의 도시다.
카사밀라(Casa Mila 별명은 채석장-La Pedrera) 는 Grasia St.에 있는 건축가 Antonio Gaudi 가 1906-1910년에지은 5층 짜리 고급 맨션이다.집 전체를 조각하듯 지은 독특한 건물로 1984년 Unesco 에 등재된다.파도가 출렁이는 외벽과 복잡하게 얽힌 철제 발코니 동굴처럼 생긴 출입구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Unesco 등제된 Gaudi 의 구엘 공원(Park Guell)은 구엘백작 후손에 의해 시에 기증된 공원으로 정문앞에 Mosaic 불도마뱀이 웃으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계단위에 오르면 둥굴게 장식된 예뿐 타일 앞으로 도마뱀 주둥이에서 물이 흐른다. Ceramic Tile벽이 있는 계단뒤로 시장 용도로 계획된 그리스신전을 연상시키는 86개의도리아식 기둥위로 사람들의 머리가 보인다.지봉 상부에 오르면 운동장같이 넓은 테라스가 있고 뺑 둘러 구불구불 뱀이 기어 가는 듯한 Mosaic Bench가 있으며 시내와 지중해가 보인다.
구엘공원안에 있는 돌로만든 육교 (Viaduct)는 전원 주택이 있는 높은 언덕을 오를수 있도록 만든 마차길이였고 밑의 오솔길은 보행자를 위한 길이다.돌기둥은 채석장같은 이 부지에서 지천으로 나온 돌을 시멘트에 뭉쳐 자연적으로 돌이 튀져 나온것처럼 세워졌다.자연을 사랑했던 가우디의 의도를 나타낸다.이러한 돌 육교가 비탈진 곳마다 세워져 있다.
피카소 미술관에 있는 Picasso 가 1957년에 그린 Velazquez 의 Las Meninas(시녀들) 를 그 자신의 창의적으로 그렸다. 흥미롭게도 인물 하나하나를 그의 보는 관점에서 57개의 그림으로 그려 한 방의 전시실에 Series 로 전시해 놓았다.
성가족 성당( 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은 Unesco 문화 유산인 Antonio Gaudi의 명작이다.2026년 완성되면 길이 95M 넓이 60 m로 신도 13,000 명이 들어갈수 있는 가장 큰 성당이 될것이다.가우디의 건축 초석은 십자가 심볼로 바른쪽에 탄생,왼쪽에 수난 중앙에 제단 그리고 제단 반대편에 부활의 영광 파사드가 들어 갈것이다.외관의 18개 타워중 100m 의 12 탑은 12 제자,조금 얕은 탑은 4명의 복음성인, 탑과 탑을 이어주는 돔은 정모 마리아, 중앙 Main Tower은 170 m 로 십자가위의 예수님( 미완성) 이 올려질 것이다.
동쪽 출입구인 탄생 파사드(Nativity Facade)는 가우디의 작품이다. 1개의 파사드와 4개의 작은 탑만 완성하고 전차에 치여 사망했다.벽에 성경을 박았다. 예수님 가족과 탄생 ,동방박사와 목동,마리아의 수태고지,천사들의 악기연주,비둘기들.이곳의; 인물상은 모두 가우디가 살던 이웃들은 일일이 석고로 뜬후 그대로 돌로 조각해서 만들었다 한다.그가 항상 접했던 동물,곤충,나무잎,꽃같은 것으로 벽을 디자인 했다.
예배드리는 본당은 올려다 볼려면 목이 아풀 정도로 높은 중앙 천정과 원주들의 구조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이용하여 나무가 욱어진 숲속에서 가지가 갈라지듯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숲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자유분만하게 표현했다.원주들은 무게를 받쳐주기위해 견고하고 질이 다른 종류의 돌을 사용하여 안전을 기했다고 한다.하나하나의 조각과 무늬에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가우디의 무궁무진한 천재적인 감각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쪽 출입구 수난의 파사드( The Passion Facade) 는 스페인 건축가 수비락 (Josef Subirachs :1927-2014)에 의해 1986년 부터 20여년간 건축한것이다.그는 가우디 식을 따르지 않고 직선적,추상적,현대적 으로 단순하게 수난당함을 표현했다. 꼭대기의 십자가상의 예수님,최후의 만찬, 골고다언덕,옷 제비뽑기,입 맞추는 가론 유다, 죽음을 애통하는 모습,로마병들을 묘사했고 바로 문위에 알파와 오메가를 새겨 놓았다. 입구 밖으로 기울어진 기동에 달리신 예수님상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기원전 BC 와 기원후 AD로 갈림을 상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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