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 작성자 : 송영옥
  • 조회 : 1,877
  • 16-05-10 07:42

 23일 일주일간 잉카 문화 발상지 페루를 향한다. 뉴악 공항에서 수도인 리마까지는 8시간 여정, 시차는 1시간 늦어진다. 이곳에 약 2만년전 우랄산맥의 아시아계통의 유목민이 베링해협을 건너서 남으로 남으로 진출 사냥과 어업과 열매를 따 먹으며 강과 호수와 해안에 정착하였을 것이다. 남미 대륙에서 브라질,알젠틴 다음으로 3 번째 큰나라로 한반도의 6배 정도의 면적과 인구는 3100만명, GDP$8000, 종교는 80% roman catholic, 300년간 Spain 지배영향으로 다양한 인종 분포로 원주민인 Indio 45%,스페인계 40% 아시아와 아프리카인이 있다. Peru는 크게 태평양 연안의 사막지대,안데스산지, 면적의 반이상이 아마존분지의 밀림지역으로 구분 각각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원전부터 부족사회를 중심으로 차빈문화,와리,시칸,모치,치무문화 등등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었고 Columbia 가 미대륙을 발견하기전 가장 크고 진보된 INCA EMPIRE가 주변 나라 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다가 SPAIN 의 침략으로 무너진다. 식민지왕국에서 1824년 독립하나 거듭되는 내전과 주변나라들간의 국경전쟁으로 경제적,사회적으로 저개발 상태에 머물며 2000년도 이후에 민주 정부가 정권을 유지하며 성장을 촉구하나 아직도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빈곤층이 1/3 에 달하는 열악한 환경이다. 대다수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20% 정도의 다양한 원주민 언어가 사용된다.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이동 700 km 떨어진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해발 3400-3800 m 의 고도의 도시 옛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CUSCO) 에 도착한다. 저 산소증으로 연약한 신체에 증세를 악화시킨다고 고산증 방지를 위해 가이드가 준 약을 먹고 코케인의 원료가 되는 코카잎으로 우린 차를 마시고 했는데 목이 바짝 마르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깊은 숨을 쉬며 느리게 걸어야 한다. 고도 도시에 4계절이 하루에 존재한다고 햿는데 자외선이 강하고 날씨는 화창하고 선선했다. 이곳 원주민은 환경에 알맞게 키는 작고 목은 굵고 가슴은 넙적해서 페할량이 크다고 한다. 아무리 유명한 축구팀이 와서 경기를 해도 이 도시에서는승자가 될수 없단다.그래서 이곳에서 부자가 될수있는 길은 축구선수가 되던지 마약 딜러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농담이있다. 잉카 신화는 1043년경 태양신의 아들인 Manco Capac이 황금지팡이가 박힌땅에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도시를 세운곳이 세상의 배꼽이되는 Qosqo 이며 9대 황제Pachacutec 왕 때는 주변의 6 나라까지 영토 확장을 하여 지구의 중심역활을 하였고 백만이 넘는 인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45만명의 주민이 거주한다고 한다. 잉카인은 이 도시가 Puma 형태라고 하며 거대요새 Sacsayhuaman 이 머리며 몸통은Tullumayu 와 Saphy 강 이고 꼬리는 2 강이 합쳐지는 Huatanay 강 이라한다. 찬란한 문명이 탄생했어도 상형문자가 없어 기록이없고 언어역사로 추리할수밖에 없다. Inca 와 Spain 의 자취가 공존하는 중앙광장을 산책후 주위에 산재한 잉카 유적을 돌아본다.


쿠스코의 중심지 아르마스광장( Plaza de Armas)의 대성당Iglesia de la Compania 는 잉카 시대때 군대의 광장(Huacaypata)으로 왕궁과 신전이 있던곳으로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잉카 건축은 다 허물고 주위에 14개의 교회와 귀족의 집과 식당 기념품점이 들어섰다.분소대위에 태양신의 후예로 숭배받는 대제국으로 확장시킨잉카 9대 황제 Patacutec 동상이 서있다.


PERU 국기와 함께 펄럭이는 무지개 국기는 잉카의 상징인 잉카제국(Tawantinsuyu)의 국기로 정부청사나 중요 광장에서 볼수 있다.무지개는 우주의 경계선인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풍요,다산 혹은 재난을 가져 온다고 믿었다.


광장에는 주말마다 음악과 춤과 전통옷을 입고 퍼레이드를 펄치는 축제가 벌어진다.


골목길에는 아직도 잉카인의 정교한 석벽 기초위에 현대 집이 세워졌다.돌길위에는 500년전에 만들어진 흠파진 수로가 경작지로 거민의 식수로 전달될수 있도록 근처의 강,산속의 샘물, 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흘러가게 한것이다.


아리마스광장에서 10분쯤 걸어가 태양의 신전인 코리칸차(Qorikancha) 신전에 입장한다.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가 석조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St.Dominic 성당과 수도원을 건설한다. 신전의 견고한 돌바닥과 6 m 높이의 석벽과 얕은 석벽위로 스페인이 올린 Moorish 주랑안쪽으로 태양,달,별,천둥번개,무지개 신전들의 방들이 사방으로 남아있다. 신전벽에는 폭 20cm 이상의 금띠와 문과 지봉에는 2 kg 정도 금벽돌이샇였고 정원중앙에는 55kg 의 황금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며 스페인들은 신전의 항금을 싹벗겨 녹여서 막대형태로 스페인으로 가져 갔다고 한다.


철기를 사용한 흔적이 없는 잉카인이 돌에 정교한 흠을 파고 돌기를 만들어 서로 견고하게 맞물려 접촉제없이 완전한 석공술의 진미를 보인다. 수많은 지진으로 성당은 무너졌어도 잉카의 돌벽은 건재한 이유다.


현재는 모조품이나 잉카인의 우주관을 나타낸 금판이였다.해와 달,별,무지개,구름과 천둥,나무,라마,인간이 그려진 잉카인의 세계관을 표현한다.


제물을 바치던 제단과 벽장위에는 금과 은으로 된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


유적지의 돌로 조경된 사라토 정원에서 본 코리칸차 의 외부모습으로 왼쪽 하단부의 붉은색와 검은색 부분이 코리칸차의 원래 석벽이다.돌담 장인들의 현무암 벽은 지진에도 굳건히 잉카의 얼을 지키고 있다. 식민지 시절때 성당과 수도원에는 수많은 성직자와 수종자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거대한요새 삭사이와만(Sacsayhuaman) 은 수례바퀴도 사용치 않던 시대때 어떻게 수많은 돌들을 옳겨서 쌓았는지 수수께끼다. 약 1460 AD Parachutec 황제때 건설된 대단한 기념물이다.1536년 스페인과의 격렬한 전쟁터였다. 요새 역할과 더물어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중요 행사를 치루는 콤풀렉스다.이 요새는 푸마의 머리로서 3 층의 성벽에 지그재그로 돌벽을 쌓았고 500 m 길이에 높이 18 m 달하며 현재는 20% 정도의 돌만 남았다고 한다.남은 돌중 8 m 높이에 360 톤이 나가는 거대한 돌이 서로 다른 size 의 돌과 완전조화를 이루고 있다. 넓은 앞 광장에서 6월 24일 동지날에 전통 축제인 태양제로 잉카로 부활한다.


요새의 산꼭대기 전망대위에 대형 예수님상이 팔을 벌리고 쿠스코시를 내려다 보고 있다.


요새에서 1 km 떨어진 곳에 미로라는 바위산 유적인 겐코(Qenqo) 신전은 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입구의 6 m 높이의 Monolith 큰돌은 수형신인 푸마라고도 하고 두꺼비라고도 한다.


큰바위산에 터넬을 만들어 계단이 있는 굴로 내려간다. 제물로 드린 라마의 피를 모아 지그재그로 흠을 판 통로로 피가 잘 흘러가면 좋은해, 중간에서 끊기면 운 나뿐해가 됨으로 충분한 음식과 일용품을 갖추어 겨울준비를 해야 한다.


언덕위에 위치한 Tambomachay 샘터는 400 m 더 올라가야 했고시간도 모자라고 고산증에 지쳐서해발 3765 m 라고 팻말 붙은곳에서 Alpaca 털실로 목도리를 뜨고 있는 Peru 전통옷을 을 입고 있는 아줌마와 선량한 눈을 가진 alpaca 와 사진만 찍었다.


서둘러 내려왔는데 해는 지고 약간 어두어도 안데스산맥과 Urubamba 강이낀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 of the Inca)이 볼수 있었다. 비옥한 땅과 따뜻한 기후로 잉카문명이 이루어진 계곡이라 신성히 여긴다.우루밤바 강은 724 km 로 ANDES 산에서 발원하여 Amazon 강과 합류한다.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1 시간 더 내려가 2800 m 에 위치한Urubamba 도시의 hotel 에 묵어 고산증 지역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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