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송영옥
- 조회 : 2,617
- 13-03-02 06:16
1월 29일 4 pm 집을 떠나 JFK 출발 JORDAN 경유 Cairo Hotel 도착 은30 일 10 pm .중학교때 만화책에서 읽었던
축지법을 써서 천리도 한걸음으로 갈수 있었다면 시간 절약으로 여행이 참 즐거울텐데 공상해본다.이집트 나일강의
기적,최초의 문명 발생지,아프리카의 강국 그렇게 예상했는데 곳곳의 쓰레기더미,모래바람으로 찌든 건물들과
벽돌로 집터를 잡아놓은 수많은 미완성 불법 건축물을 보니 정치적으로 불안함이 보였다.GNP가 $6000인
개발도상국이라니 부정부패로 조상이 물려준 찬란한 유산도 잘관리를 못하는듯 보인다.이집트의 성지순례는
예수님피난교회,모세기념교회,고고박물관,피라밋드와 스핑크스이다. 95% 가 사막인 이곳 사하라사막에 있는
피라밋드도 사진과 영화로 많이 보아서 그런지 돌이 크다는 정도고 스핑크스는 한국의 해태와 비슷했다.
다음행선지는 이스라엘 자손이 40 년간 유랑하던 시나이 반도로 이동한다. 시나이반도는 이스라엘이 6 일
전쟁 승리로 12 년간 점령하였으나 국제여론에 못이겨 이집트에 반환 되였고 지금은 이스람 무장세력의 시위와
분쟁,베두인 과격분자들의 여행객 피납사건등등 출애굽경로가 봉쇄되어 멀리 돌아갈수밖에 없었다.
여행자 안전을 위해 구역마다 Convoy 지역이 있어 시간 맟혀 모든 차량은 군용차 인솔하에 이동한다.
Cairo 로 에서 6 시간 거리가 10 시간 넘어 걸렸다. 잠도 접고 새벽 2 시에 모세가 10 계명 받은 시내산에
오른다. 뜨거운 사막지대를 언제 자났느냐 싶게 험악한 산악의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완전 겨울무장하고
이마에 전등을 두르고 해발 2290 m (한라산높이 1950m) 를 오른다.올라갈수록 눈이 쌓였고 숨이차고 급한
경사는 아니라도 돌이 많고 비끄러웠다. 나는 제 3 초소에서 멈추었다.2000 m 는 올라온것 같다. 용감한
순례자도 정상은 완전 빙판이라 올라갈수 없었단다.시간은 6 AM 일출을 기다리려고 coffee shop을 나가니
바람이 정말 매섭고 추웠다.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찬란한 아침해의 짙은 붉은 색갈이 마침 지나가는
구름에 물들이며 이글이글 타오르는데 창조주의 성스러운 기운이 스며들면서 가슴이 벅찼다.날이 밝아지니
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생각보다 더 높은데 우리가 서있고 어마어마한 바위산들이 서로 다른 모양새로
위용을 자랑한다.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감사하며 하산할때는 가볍게 날듯이 내려올수 있었다. 산밑에
있는 성 카터린 수도원앞에서 예배드린후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불타는 떨기나무와 이두루 우물 순례후
이스라엘 국경 타바로 이동 출국문 통과후 49 명 순례자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입성하니 우선 화장실
문제가 시원히 해결되었다..한국전쟁후 폐허땅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던가 다 잊어바리고 풍부해서 넘쳐나는 미국에 뭍혀 살다보니 후진 나라들이 비교가 되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60%가 광야 즉 메마른 땅, 22개의
아랍국 중간에서 불안한 나라,바밸론에게 포로로 끌려가고 앗수리아,페르시야 시대를 거쳐 로마제국에 나라가
말살돼어 2000 여년간 세계로 떠돌았고 비잔틴시대,십자군시대, 오스만터키, 세계 1,2 차 대전이후 유대인들의
시온으로 돌아가자 운동이 벌어지면서 그 당시 영국 통치하에 있던 Palestein인이 거주하던 땅을 반이상
58:42 비율로 분배받아 1948년 정치적으로 독립한 나라 이스라엘이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의심
스러웠다.비유의 말씀에 우리는 항상 고정 관념으로 우리가 믿고싶은대로 믿으려는 오류를 범한다.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라 말한적이 없는데. 젖은 유목민애게 적함한 땅이요,꿀은 정착민이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으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동시에 받는 축복된 땅이란다.성경이 바로 그들의 역사고 그들만이 선민이라는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기독교인들에게는 한번은 밟아보고 싶은 The Holy Land에 우리는 서있다. 국경지대는
지하수가 풍부한 Oasis 에이랏이란 신흥도시를 지나자 다시 사막 네게부사막을 거쳐 죽음의 바다 사해앞의 Hotel 안에 있는 사해물 spa에서둥둥 뜨는 채험을 했다.요단 강울이 들어와 갇히고 뜨거운 사막의 태양으로 증발력이
심하여 염분 농도가 33%가 되어 생명체가 살수없으나 광물질의 보고로 주변애는 사해물로 광물질을 추출해내는
수많은 공장들이 휘황찬란한 야광을 켜놓고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아침에 해변에 발을 잠그고 모래를 움켜잡으니
소금이 떠진다.조식후 최후의 격전지 높이 434m 의 절벽요새 맛사다로 이동.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이 강력한
로마군과 싸우다 마지막이 됨을 알고 노예로 끌려가 치욕을 당할수 없다하여 960명이 자결한 곳이다.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현재 이스라엘 군장병들의 선서 식장으로 활용되는 영웅들의 성지다.Never Again! 을
외치면서.이어서 구약성서 원본 두루마기가 발견된 쿰란을 거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에 첫발을 디딘 여리고에 갔다.흙으로 지어진 여리고성이 폭삭 넘어졌다하더니 잔해도 별로없다.
다음행선지는 험한계곡 유다광야 와디켈트, 참이읏(눅 10:29-37)이 실감나는곳,강도를 만나면 도움을 구할데가
없는 첩첩산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표현할수 있는곳이고 깊은 계곡밑으로 물이흐르고 St.George수도원
이 홀로 계곡 아래에 있다. 다음날은 예루살렘 입성.황금의도시 혹은 평화의도시인 이곳은 3000 년의 역사를
간직한채 다윗이 수도를 삼았듯이 현재도 이스라엘의 수도이다.수많은 전쟁으로 피를 흘린곳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였으며 전세계에서 찿아온 성지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고 도시이다.성문에 있는 검문소
남녀 문이 다르다.넓은 광장에 들어서자 통곡의 벽이 있고 중앙에 칸을 막고 남녀 따로 통곡의벽에 다가
갈수 있다.유 대인이 성경책을 들고 머리와 웃몸을 앞뒤로 흔들며 읽고 기도한다.성전을 잃은 슬품과 포로의
모질고 힘들었던 역사를 생각하며 참회와 통곡의 기도를 드린다.벽틈사이에 소원,질병,고통의 사연을 적은
작은 종이쪽지를 촘촘히 끼워 놓고 기도한다.성 밖으로 조금 나가니 모스렘사원 바위사원(The Dome of The Rock)
이 있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다고 하고 아랍인은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다고 주장하는
아랍인들의 성지다. 바위사원안에는 번제 돌제단이 있다하나 들어가 볼수 없었다.둥근지봉은 금으로 입힌 아주
화려한 모스렘 사원이다. 두 민족간의 잦은 충돌로 유대인은 금지구역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활보시내산 일출
맛사다의 맹세
남녀부동석 통곡의 벽
유대인 출입금지 바위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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