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금요일부터 하반기 부흥회가 있습니다. 크리스찬타임즈에 인터뷰한 기사를 올려 놓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조기 은퇴를 하셨지만 45년이나 목회를 하셨습니다. 먼저, 신학을 하게 된 동기와 목회자로서의 신앙 철학을 말씀해주세요.
저는 저희 집안의 첫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전도를 받은 고등학생 형을 따라 초등학생일 때 교회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잘 몰랐던 중학교 1학년 어느 주일 저녁, 교회를 다녀온 후 일기를 쓰면서, '만약 예수님께서 날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목회자가 되는 것 말고 무슨 다른 길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기록했습니다.
고1 가을 어느 주일 예배 중 설교를 듣는데, 늘 거슬리던 죄인이라는 말, 예수님이 날 위해서 죽었다는 말, 구원 받는다는 말이 거슬리지 않고, 마음 속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들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 말들을, 제가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스스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교회를 너무 오래 다녀서 세뇌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세뇌 당한 것이 아니고, 제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이 제 마음 깊은 곳에 계심을 보여주는 경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영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나는 성경도 안 읽어봤고, 교회도 안 가봤지만, 기독교는 좀 이상한 종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평소에 학교에서 질문 한 번 해본 적 없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새빨간 얼굴로 항변하며 5분은 떠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반 담임이셨지만 제 목소리는 그 날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몇 번에 걸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제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고3 때 처음으로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삶의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살아가야 할 방향을 잡게 되었고,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진로를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 신학대학을 다니며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기 시작한 이후 45년 만인 2019년에 목회 사역을 내려놓았습니다. 1981년 연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전임 사역자로 사역을 시작한 지 39년만인 2019년 12월에 기독교 학교 총괄 교장과 이사장직에서도 은퇴했습니다. 2018년에 암 수술을 받고, 건강에 문제가 생겼지만 70세까지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주께서 분명하게 물러날 것을 명하셔서, 조금 이르게 목회사역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역을 배우면서 주님께로부터 자연스럽게 얻게 된 마음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성도들이 가정을 잘 세우도록 돕고, 성도들의 직장과 사업이 성경적 기초 위에 세워지도록 돕는 것이 목회자의 사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강해하는 설교에 열중했고, 교회 공동체가 진정한 가족이 되는 일을 위해서 소그룹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자녀들이 다음 세대의 신앙운동을 잘 이어가도록 기독교 학교를 세우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선교는 북한, 중국, 아프간을 중심해서 주께서 도전을 주시는 지역을 품고 섬겼습니다. 은퇴한 지금은 이 모든 사역의 2선으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이 사역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피랍 사태 이후 한 때 트라우마를 겪기도 하셨지만, 아프간에서 사역하시는 한 장로님을 만난 후 아프간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시고 아프간을 위한 선교단체에서 헌신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 때의 이야기와 사역을 소개해주세요.
2007년 아프간 피랍 사건을 겪은 후, 탈레반이나 아프간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무슨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심정으로는 아프간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연말 즈음에 아프간을 위해서 일하는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NEI(Nutrition and Education International)란 단체를 만들어 아프간인들을 섬기고 있는 재미 교포 권순영 박사님이었습니다. 이 분이 하는 말씀이, 아프간 피랍 사건을 보며, 샘물교회와 박 목사가 아프간을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분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를 만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분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배형규 목사와 심상민 형제는 아프간 땅에 순교의 피를 뿌렸는데, 나는 그곳을 외면하려고 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섬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KCA (Korea Cuurch for Afghanistan)란 선교 단체를 만들어, 아프간 난민을 위해 그리스 아테네, 인도 델리, 터키, 영국, 타지키스탄 등 난민이 있는 곳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내지에도 미국 시민권자 선교사님들을 파송하고 아프간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사역도 저는 2선에서 돕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비난을 감수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 용인 동백에 은혜샘물교회와 샘물학교를 세우시고 은퇴하신 후, 또 다시 S국에 본교가 있는 문도 글로벌 신학교를 용인에 세우셨는데, 그 일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나누어 주세요.
1998년 10월 분당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저의 헌신이나 용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몇 분의 선배 목사님들이 개척을 권유했지만,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운전을 하는 저의 눈앞에 글자가 떨어지면서 개척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새로운 곳으로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분당으로 내려와 분당샘물교회를 세우고 상당한 양적 성장을 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저로써는 그 양적 성장이 기적이라고 느꼈으나, 하나님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개척 초기에는 전도하고 양적 성장을 이루는 일에 열중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와 교회를 또 다른 길로 접어들게 하셨습니다.
분립개척운동을 통해서 대형 교회 하나보다 건강한 중형 교회를 많이 세우는 일을 위해서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소그룹 운동을 통해서 공동체다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기독교학교 운동을 통해서 분당에 샘물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세우게 하셨고, 용인 동백에 샘물 중학교와 고등학교, 은혜 샘물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동탄에 더샘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주께서 맡겨주신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고 싶을 때, 그들을 도와서 그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 때문이었습니다.
글로벌 문도 하우스를 통해서는 S국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을 양육하는 일을 섬기고 있습니다. S국에 신학교를 세우고 오랫동안 운영해 왔지만, 석·박사 과정이나 목회자 재교육 훈련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들을 용인으로 불러서 이곳에 있는 한국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들 교회를 돕고, 리더를 양육하는 일을 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S국 이외의 나라 목회자들과 신학자들도 섬기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와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교회와 크리스찬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상황이 이전의 어떤 재난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이것이 특별한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 위기는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들이 우리 앞에 놓일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빠이신 그 분이 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고 계심을 기억하면서, 평안 가운데, 우리 곁에 있는 어려운 분들을 잘 섬기면서 이 상황을 극복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끔 하나님께서 왜 코로나19 같은 고약한 질병을 허락하셨느냐는 원망을 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러나 저는 코로나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생겨난 재앙을, 하나님이 '뒷수습' 하고 계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빠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코로나 상황 속에서 오히려 복음의 능력은 더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 초기에 중국 우한에 노란 옷을 입은 크리스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고통과 절망 가운데 빠진 우한 시민들을 섬기고 도왔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한 시련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신다는 것과 그분이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그분을 신뢰하며 견디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사님께서 좋아하시는 성경 구절과 재미 교포 크리스찬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기본적으로 시편 23편, 요한복음 3:16을 비롯한 귀한 말씀들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성경 구절 즉 마음에 다가오는 성경 구절은 매일 다릅니다. 큐티와 성경읽기를 통해서 말씀을 접할 때 요즘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말씀과 하나님이 나의 아빠라는 말씀과 연관된 구절을 읽으면 어느 날보다 더욱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보다 미국에서 코로나19를 맞는 재미 교포 여러분들이 더 절박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떠한 연유로 미국에 가서 살게 되셨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믿기로는 당신을 미국에 보내신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의 아빠시고, 그분은 우리에게 늘 가장 적당하고 좋은 것을 주시며, 눈동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과 함께 이 땅의 남은 길을 평안 가운데 걷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정리 윤혜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출처 : 크리스찬타임스(http://www.kctusa.org), https://www.kctusa.org/news/articleView.html?idxno=1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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